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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NC 1985년 총회 유치를 회상하며(下)
<특별기고> 석성환 前 한전 외자처장
2012년 04월 23일 (월) 08:37:49 한국전력신문 webmaster@epnews.co.kr

의장이 중국 측에 먼저 하겠는가 물었다. 그런데 중국 측은 아무런 준비가 없었는지 먼저 하지 않겠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한국 측 이창건 박사가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이창건 박사는 모든 자료를 잘 준비했고 유창한 영어로 유머러스하게 진행했다. 그 당시 가장 유행하던 프로젝터를 사용해서 예쁘게 디자인된 자료를 선보이고, 또 바로 전해에 서울에서 열렸던 PATA(아세아태평양관광협회)총회에서 사용하고 남은 여행자료(칼라 브로슈어)를 몽땅 가져와서 배부하니까 아주 완벽하게 자료 준비가 된 셈이라 모든 참석자들은 ‘와~’ 하면서 놀라워했다.

그 당시에는 한국이 어디 붙어있는지 잘 모르던 시절이라(지금도 Korea라는 이름은 유명해졌지만 지리적인 인식은 마찬가지이다) 왕래하는 루트와 숙박시설 소개가 중요한 소개 사항이었다. 특히 회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Spouse Program’이라고 해서 동반한 배우자들이 여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대목이었다. 이 설명을 듣자 참석자들은 환호하면서 모두들 박수를 쳤다. 게임은 여기서 끝난 셈이다.

그러자 Dr. Wang이 중국 측 대표더러 무어라고 이야기 하니까 이 사람이 일어나서 종이 한 장씩을 돌렸다. 이것은 국제회의 자료라기보다 대학생의 메모같이 조잡한 타자기로 찍어서 복사한 내용이었다.

내용을 훑어보니 자기네는 국가 무슨 기관에서 언제 승인이 나서 무슨 무슨 준비가 다 되었다는 식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나서 서툰 발음으로 이 내용을 그대로 읽어 내려갔다. 이것이 끝나고 의장이 양측 인사들을 잠시 나가있으라고 해서 로비로 나왔다.

로비에서 적대시하던 나라 중공(당시는 그렇게 불렀다) 인사와 대면하게 되었다. 왜 그랬는지 그들 3명은 모두들 녹색의 면으로 된 군복들을 입고 있었다. 적어도 외국에 나가는 사람들인데 촌티가 줄줄 흐르고, 한 사람은 영어를 입도 떼지 못했는데, 이창건 박사가 이 사람이 아마 이 팀의 책임자이고 공산당원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명함을 교환했는데 핵능공사의 간부들이라고 했다.

한 삼십분 지나서 사람들이 흩어져 나왔다. 회의 결과는 정근모 박사를 통해서 들었다. 결정은 한국의 승리이고, 중국에 대한 배려로 제6차 회의를 미주대륙 쪽이 아닌 ‘중국’으로 정한다는 결정이었다. 그날 밤 성낙정 부사장이 주관해서 ANS 임원들과 만찬을 했다. 승리자의 축하파티가 된 셈이다.

여기서 Manning Muntzing이라는 사람과 옆자리에 앉았다. 이 사람이 차기 ANS(원자력학회)회장이 된다고 해서 물리학 박사쯤 되는 가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날더러 전공이 무슨 분야냐, 한전에서 무슨 업무를 담당하고 있냐고 물어서 원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한전에서는 원자력 관련 계약과 관리 같은 기획 일을 담당한다고 하니까 “그러면 변호사군요, 사실 나도 Harvard Law School을 나온 변호사입니다”해서 놀랐다. 대 미국 원자력학자들의 모임에서 변호사를 회장으로 세우다니! 미국사람들의 조직운영기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또 한 가지, 이 짧은 기간 동안 지내면서 알게 된 것은 당시 미국 원자력분야에서 정근모 박사의 위상이 엄청나게 높더라는 것이다. 국가의 막대한 연구비를 주무르는 재단의 사무총장이라는 직책도 있었겠지만 그의 능숙한 사교 수완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것은 후일 이분이 한국에 와서 일을 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도 느낀 것이고, 사실 우리 원자력계의 많은 일들이 이분의 아이디어와 권고에 의한 것임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당시 정근모 박사는 이미 한전의 고문으로 있었고, 정 박사의 권유로 새로 Muntzing 변호사를 한전의 고문으로 추대해서 한동안 정기로 자료를 받았다. (여기서 한마디- 지난번에 우리가 UAE에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했는데, 정근모 박사의 보이지 않는 활동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해서 3년 후 제5차 회의가 한국에서 열렸다. 그 당시로는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를 새로 건설하는 나라가 한국과 중국뿐이어서 많은 미국 업체들이 집단으로 몰려와서 아주 성황을 이루었다. 중공 대표들도 참석했다. 아직 국교를 트기 전이지만 중공 민항기가 불시착하는 사건 이후로 양국의 왕래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때였고 그 7년 후에 한중 국교가 수립되었다. 여흥 순서로 리틀엔젤스 회관에서 노래-춤을 보여주었던 것이 기억된다. 그러나 아직 원자력산업으로 보여준 우리 것은 별로 없었다.

세월이 흘러 흘러 2010년대가 되고 보니 한국은 원자력 강국이 되어 버렸다.

창원 두산중공업의 백야드에 가면 산더미 같이 쌓인 중간재들이 자랑스럽고, 경남 고리에 가면 신고리1,2호기(한국형 1400GW)가 웅장하게 건설 중이고, 오랜 운전경험에서 얻어진 많은 사례들을 발표할 페이퍼들도 무궁무진하고, 많은 세션마다 자랑할 만한 것들이 산더미 같았을 것이다.

불과 30년에 이렇게 성장한 것이다. 더구나 2011년 봄에 일어난 일본의 지진사건과 일본정부의 원자력 포기선언으로 앞으로 원자력 산업을 하는 나라가 한국과 프랑스 정도로 좁혀졌다. 미국은 이미 1979년 이후 30여년에 걸쳐 파철이 되고 Westinghouse가 일본의 도시바에 팔리는 등의 수난을 겪었고, GE가 만드는 BWR는 지난번 후꾸시마 원전사고로 인해서 쳐다보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세계의 그 많은 원자력발전소의 오버홀 때마다 부품들을 모두 우리 두산중공업이 독점공급하다시피 하는 형편이다. 게다가 UAE에 원자력발전소 수출을 이루고 보니 이번 PBNC에서 우리 원자력계가 자랑할 것이 참 많은 자리었는데 그만 정치적 폭로가 재를 뿌리고 국내 언론의 냉대로 인해서 적어도 국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된 점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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