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 지어 높은 곳을 향하는 습성/털과 고기로 인간에 봉사하는 친구

다사다난했던 임오년(壬午年)이 저물고, 계미년(癸未年) 새해가 밝았다. 모두가 신년인 양의 해가 희망찬 1년으로 기억되길 바랄 것이다. 말의 해였던 작년은 말의 활발한 역동성 때문인지 유난히 우리를 울고 웃긴 큼직큼직한 뉴스가 많은 해였다. 6월의 붉은 물결이 그러했고, 대한민국 주류의 교체로까지 해석돼는 12월의 선거가 또 그러했다.
그러나 올해는 양처럼 포근하고, 순한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많은 이들의 소원이 있을 것이다. 태고적부터 우리 인류와 함께 했지만 의외로 잘 모르고 있는 양에 대해 알아보자.



양은 생물학적 분류로 소목 소과 양속에 속한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기 좋아하는 습성을 지녔다. 몸길이는 수컷이 1.2m, 암컷은 1m 정도 되며, 몸색깔은 흰색·검은색·갈색·붉은색 등 다양하다.

양은 가축인 면양·무플런양·아르갈리양·빅혼·우리알·아시아무플런·달리빅혼·시베리아빅혼·아메리카빅혼 등 야생의 양을 포함한다.

염소류와 비슷해서 구별하기 어렵지만, 양의 뿔은 단면이 삼각형이고 앞가두리는 곧으며 대개는 뒤쪽의 아래를 향해 소용돌이 모양으로 굽는다. 또 염소류의 수컷에는 꼬리의 밑부분 아랫면에 1쌍의 취선(臭腺)이 있으나, 양에서는 이 선이 없고 안하선(眼下腺)·제간선(蹄間腺)·서혜선(鼠蹊腺)이 있다. 두골에는 누공(淚孔)이 안와연(眼窩緣) 안쪽으로 뚫려 있는데, 이 점이 염소류와 다르다. 다른 반추동물과 마찬가지로 먹이를 되새김질하며, 위는 4실로 나누어진다.

뿔은 암수 모두 없는 것과 수컷에만 있는 것, 암수 모두에 있는 것 등 여러 가지이며, 대개 수컷의 뿔이 크다. 몸의 크기는 품종이나 조건에 따라 다르며, 수컷이 암컷보다 크다. 대형인 것은 몸길이가 수컷 1.2m, 암컷 1m이고, 어깨높이는 수컷 1m, 암컷 90㎝이며, 몸무게는 수컷 115㎏, 암컷 95㎏이다. 주둥이는 좁고, 털이 있으며, 입술은 가동성이다. 아래턱에 수염이 없다. 꼬리는 야생종이 짧고 가축종은 긴데, 굵게 자라 지방이 저장되어 있는 품종도 있다.

가축종은 체모가 조밀하며, 굵은 털은 거의 없고 솜과 같은 털이 대부분인데, 이 털을 면모(緬毛)라고 한다. 얼굴과 네 다리에만 약간 굵은 털이 있는데, 가늘고 곱슬곱슬하다. 그러나 야생종에는 굵은 털과 솜털이 모두 있다. 털의 표면은 좁고 날카로운 비늘이 지붕에 깐 기와처럼 빽빽이 늘어서 있으므로 압축하면 서로 얽혀서 펠트가 된다. 털 1개의 굵기는 털의 품질이 좋은 레스터종의 경우 약 500분의 1㎝, 잭슨메리노가 약 2,000분의 1㎝이며, 빛깔은 흰색·검은색·갈색·붉은색이다.


인간과 양

인간의 역사에서 양은 선사시대부터 등장한다. 양은 개 다음으로 가축이 된 동물이다. 종래에는 양이 신석기시대에 사람이 정주적 농경생활을 시작한 이후에 가축화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사실은 그보다 훨씬 빨리 농경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순화되어 있었다. 중석기시대에는 염소와 함께 양을 수렵했는데, 양은 군생 동물로 먹이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양은 반드시 한 번 왔던 길을 다니는 습성이 있으므로, 처음에 사람들은 돌아오는 야생의 양떼를 기다렸다가 사냥을 하였다. 그러나 사람이 식량으로 야생의 양을 필요로 하는 일이 많아지자 이번에는 직접 양떼를 따라 사람도 이동하면서 필요에 따라 양을 잡아서 고기와 가죽을 이용하였다. 즉, 양에 기생하는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 동안 사람은 야생의 개가 야생의 양떼를 교묘하게 유도해 좁은 골짜기로 몰아넣은 뒤 잡아먹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개를 길들여서 가축으로 삼아 야생의 양떼를 사람이 바라는 대로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야생의 양은 사람에게 길들여지게 되었고, 곧 양을 거느리는 최초의 유목민이 탄생하게 됐다.

이러한 흔적은 BC 6000년경 농경시대 이전의 이란의 옛날 유적에서 발견됐는데. 그 무렵에 이미 양젖도 이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마도 인류가 처음으로 젖을 얻은 동물은 양이었을 것이며, 우유의 이용도 양젖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옛날에는 소의 뒤쪽에서 뒷다리 사이로 젖을 짰는데, 이것은 원래 양젖을 짜던 방법이었다.

양의 털 밑에 생기는 부드러운 면모(緬毛)의 이용은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서아시아에서는 지방이 포함된 이 털에서 펠트를 처음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 지방은 펠트의 중요한 산지로 알려져 있다.

양의 가죽은 추운 지방에서 의복이나 덮개로 이용됐는데, 특히 새끼 양의 가죽은 아스트라한으로 유명하다. 한편, 양의 부드러운 가죽은 그리스·로마 시대에 글을 쓰기 위한 양피지로 이용되었고, 중세에도 그리스도교의 성서를 여기에 썼으나, 11세기경에 제지술이 중국에서 서아시아를 거쳐 에스파냐로 전래되면서 점차 종이로 대체됐다.

양은 무엇보다도 털의 이용이 중시되어 왔는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메리노양은 에스퍄냐에서 번식에 성공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근원은 로마시대 이전에 서아시아에서 시작됐다. 로마인이 이 종을 북아프리카와 에스퍄냐로 전하고, 이것이 에스퍄냐에서 완성되어 근세 이후에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양은 가축으로서 말·소에 못지 않은 이용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고대의 수메르·이집트·그리스·로마·게르만 민족들도 이 점을 중요시해 신에게 제물로 바쳤으며, 신의 신성수(神聖獸)로서 경애되기도 했다. 한편 동양의 고대 중국에서는 은(殷)나라 때부터 식용하고 있었으며,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에 금나라에서 면양을 들여와 사육한 기록이 있다.

한방에서 양은 기(氣)를 돋우는 식품으로 보고 있다. 《본초강목》에 양고기는 중풍을 다스리고 기를 돋운다고 했으며, 《규합총서》에서는 양고기의 성질이 크게 더우므로 허약하고 몸이 찬 사람에게 성약이지만 어린아이나 임산부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200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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