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가치 아닌 국가 실익 우선 돼야

국내 원자력기술 분야 산·학·연 5천여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대표적인 학술단체인 한국원자력학회(이하 학회)는 최근 서울 중구 소재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현 정부의 국가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해 심도있고 성숙한 범국민적인 공론화의 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천명한 성명서에 대한 전력계 반응이 뜨겁다.

학회는 지난 해 10월 공론화를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가 결정되었고 신중한 탈원전 정책 시행을 요구하였으나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밀어붙이기 식으로 제8차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한데 뒤이어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고 신규원전 부지 고시를 무효화 하는등 여전히 과속 질주로 강행하고 있는 탈원전 조치에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월성 1호기의 경우, 5,900여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모든 노후 설비를 교체하여 새 원전과 다름없음에도 불구하고 손익 계산에 대한 정확한 해명없이 성급하게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학회는 신규 원전 4기의 건설계획이 백지화됨에 따라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사라지게 되었고 600여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원전 기자재 공급망 및 원자력산업 생태계의 붕괴가 예견되고 우리나라에 매우 유리하게 진행되었던 21조원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학회는 “지난 겨울 10회나 남발된 급전 지시, 한전의 2분기 연속 적자(4/4 2017 1294억원, 2018 1/41276억원) 및 이로 인한 전기료 인상 압박 등이 이제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부작용은 산업 전체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들도 나오고 있다”며 “특히 국가 주력 산업인 반도체, 철강, 디스플레이, 화학, 태양광 판넬 등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산업부문은 그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것으로 예상되고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은 10년 정도 이후에는 걷잡을 수 없는 전기 공급 불안정 및 고비용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학회는 정부 탈원전정책의 시행이 과실로 나타나고 결과적으로 국민혈세의 낭비와 정치적 혼란이 야기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염려하며 “작금의 이러한 부작용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국가 에너지정책에 대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재검토 과정이 필요함을 제기하고 오로지 국가와 국민의 미래만을 바라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하여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에너지 정책의 재수립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학회는 이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에 4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정부가 우리에게 맞는 미래지향적인 에너지수급계획 재정립을 위해 범국민 공론화의 장 마련 △정부는 지난 6월 15일 개최된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 이사회의 결정을 원인 무효화하고 신한울 3·4호기를 포함한 신규원전 건설을 예정대로 추진 △정부는 국내 원전산업생태계의 생존과 직결된 해외수출을 위하여 1차적으로 사우디 원전 수주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최대한의 지원과 노력을 경주 △국회는 수요자와 에너지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력에너지 문제를 대통령 공약 시행에 몰입하는 독선적인 정부에만 맡기지 말고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정책 시행이 되도록 노력 등이다.

◆탈원전 조치와 관련된 제반 동향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 (2018.06.26.~28)에 따르면 원전 확대 : 유지 : 축소 비율이 14 : 40 :32로 확대+유지 의견 비율이 54%인 반면 축소 의견은 32%에 불과하다. 이는 신고리 5 ? 6 호기 공론화 1차 조사(확대 : 유지 : 축소= 13 : 31 : 39) 당시에 비해 확대와 유지의 비율이 10% 증가하고 축소 비율이 7% 감소한 결과이다. 그러나 산업부는 이러한 국민여론에 반하여 한수원이사회로 하여금 월성1호기 조기 폐쇄와 신규 원전 4기 취소를 결정하도록 압박하는 등 탈원전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는 국가 원자력에너지 사업으로 2030년까지 1.4GW 원전 2기(총 2.8GW)를 도입하기로
했으며, 이 사업에 한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5개국이 수주전에 뛰어 들었다.
지난 1일 발표된 예비사업자 선정 결과는 한국을 포함한 2~3개 국이 선정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5개국 모두가 선정되었다. 사우디가 원전 사업을 발표할 당시 1.4GW 용량인 APR-1400을 UAE에 수출한 경험이 있는 한국이 매우 유리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지금으로서는 수주를 전혀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작년 1분기 까지만 해도 1조4631억원의 흑자를 내던 한전이 작년 4분기 1294억원의 적자에
이어 올해 1분기 1276억원의 적자로 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4년 6개월 만의 적자 전환이다.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발전 원가가 저렴한 원전 대신 비싼 석탄과 LNG 발전의 비중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전에서는 전기료 인상 압박을 받고 있으며, 반발이 심한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 대신 산업용 전기요금 조정을 검토 중에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너무 저렴하기 때문에 산업부문에서 전기 낭비가 심하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2018년 IEA보고서(Energy Prices and Taxes, First quarter)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은 2016년 기준 95.7$/MWh로 OECD 국가들 중 이태리(184.7$/MWh)? 일본(163.1$/MWh)? 독일(140.8$/MWh) 등에 비해 저렴하지만 노르웨이(42.4$/MWh)? 스웨덴(60.2$/MWh)? 미국(67.5$/MWh) 등에 비해 비싸서 OECD 국가들 중에 중간정도 순위를 차지한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가정용 대비 80% 수준(2017년기준 90%)으로 스웨덴(35%)? 노르웨이 (41%) 독일(43%)? 미국(54%)? 이태리(67%)? 일본(73%) 등에 비해 월등히 높아 OECD 국가들 중에 1위를 차지한다.

국내 기업 중 전력사용 순위를 살펴보면 현대제철, 삼성전자, 포스코, 삼성디스플레이 엘지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LG화학, OCI㈜ 등의 순으로 이들은 국내 주력 산업인 반도체, 제철, 디스플레이, 화학, 태양광 판넬 관련 산업체이다. 이들 산업분야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가격 경쟁력에 직격탄이 될 수 밖에 없다.

◆탈원전과 관련된 세계의 동향

정부의 주장과 달리 탈원전은 세계적 추세가 아니다. 1980년에 탈원전을 가장 먼저 투표로 결정한 스웨덴 조차도 계획대로라면 벌써 원전 운전을 끝내야 할 단계에 왔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말만 ‘탈원전’ 정책을 펴고 있지, 여전히 원전 의존도는 유럽에서 상위권(33%)을 유지하고 하며 국가의 실익을 따져가며 원전 폐쇄를 미루는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다.
탈원전이 아닌 원전을 적극적으로 건설 중인 중국은 미국의 원자로를 도입하여 자국의 표준모델로 발전시키고 있으며, 2030년에는 현재 37기의 원전을 150여 기로 크게 증대시킨다는 계획이다. 태양광 발전 분야에서도 우리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지만 원전건설에 우선을 두고 오래된 석탄 화력은 모두 원전으로 교체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후쿠시마 사고를 경험한 일본조차도 ‘원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당사국인 일본은 사고 직후 원전 제로 정책을 수립하였으나 대체에너지로 도입한 LNG 발전의 영향으로 엄청난 무역적자를 가져왔다. 결국 원전을 기본으로 하는 전력구조로 다시 되돌아가는 추세로 48기의 원전 중에 9기가 운전 중이고 규제기관의 운전승인을 받고 발전계획인 발전소가 증가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전체 전력의 22%까지 원자력에서 충당한다는 계획 (제5차에너지기본계획)이다.

원전 반대론자들이 탈원전 국가의 모범적 사례로 드는 독일은 전기값이 가장 싼 나라에서 가장 비싼 나라로 변했다. 독일과 스위스가 유일하게 탈원전 정책의 길을 가고 있지만, 독일은 석탄자원이 풍부해 그나마 대안이 있는 국가이지만 탈원전의 그늘과 태양광발전(약40GW)과 풍력발전(50GW) 확장 과정에서 엄청난 신규투자로 인해 과거 유럽에서 가장 전력요금이 저렴하였지만 지금은 가장 비싼 국가로 변했다. 탈원전 이전과 비교하여 현재 약 3.3배가 상승했다는 보고가 있다.

원전 비율 78%로 세계에서 가장 원전의 비율이 높은 프랑스는 전 정권에서 에너지전환법을 통과시켜 2025년까지 50%로 줄이겠다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으나 현 마크롱 대통령은 선거 중에는 이 정책을 지지하였으나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서 대안이 없음을 알고 조급히 서둘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한 영국의 경우는 ‘석탄화력제로’ 정책을 세우고 원자력을 기저부하(기본이 되는 전력)로 하면서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확대한다는 정책을 확정한 바 있으나 원전건설과 관련하여 한국에 러브콜을 하고 3기의 원전건설 1차 협상 대상자로 한국전력을 발표한 상태이며 이밖에 미국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원자력을 미래의주요 에너지원으로 확실히 한 상태다.

저작권자 © 한국전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