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덕 前 서부발전 사장

비핵화라는 카드로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얻어내려는 흥정, 세기의 담판이 열렸다. 우리가 회담의 당사자여야 했는데, 미국과 북한의 단독 거래에 소외된 느낌도 없지 않다. 정치와 군사문제는 그렇다 치고, 민간 입장에서 앞으로 벌어질 북한의 변화에 대한 우리의 바람직한 포스츄어는 뭘까?

경협문제는 우리의 최대 관심사이다. 북한이 개방하고 경제개발에 매진하려면, 무엇보다 전력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그간 여러 모습으로 싸워오면서도 같은 민족이라는 대명제 하에, 국민들은 북한에 대한 무한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남북의 해빙모드에 따라 많은 기업들이 경협특수를 겨냥한 조직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들리고, 전력업계도 이해에 따라 원자력, 신재생, 마이크로 그리드 등 해결책이 분분하다. 정치권 특히 야당에서는 독일의 선례를 들어, 북한 경제개발에 필요한 수천 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비용을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봉 노릇을 할 거라 한다. 북한 개발이 마치 우리 마음대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북한의 변화는 1990년 10월 독일의 경우와는 큰 차이가 있다. 첫째 두 개의 체제가 합쳐지는 통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동독은 서독에 편입된 것으로 그야말로 흡수통일이 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서독이 떠안았으며, 45년간의 분단으로 커져온 경제사회적 간극을 메우는데 서독은 안간힘을 써야했고, 당초 예상액의 두 배인 약 2조 마르크(950조원)의 엄청난 통일비용을 지불하였다.

하지만 북미간 합의문에서 보듯이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Security guarantees to the DPRK), 즉 체제보장이라는 큰 전제는 통일이 아닌 평화적 분단유지를 예측케 한다. 북한에게 우리는 특별한 존재이기 하지만, 원조 공여국 중 하나일 수 있으며, 원조나 투자유치의 조건은 자존심 강한 북한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둘째는 28년 전 통독 때와는 다른 세계적 경제규모, 즉 글로벌 투자자본의 풍부함이다. 필자가 최근 3년간 체류했던 라오스는 인구 750만의 작은 나라로, 부존자원도 많지 않아 투자대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자본을 안고 들어온 건설업체들이 사업을 따내려고 줄을 서있다.

그만큼 세계에 널려있는 공적 사적 투자자본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으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합의한 대로 비핵화와 정치군사적 불확실성이 제거된다면, 공적개발원조(ODA)를 시작으로 이 가능성 있는 세계 최빈국에 투자가 몰려 들 것이다. 라오스와 같은 공산당 일당 독재라는 체제를 갖고 있지만, 북한은 투자대상으로 큰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풍부한 천연자원, 값싸고 품질 좋은 노동력, 인접한 한·중·일·러의 경제 규모에 따른 성장 잠재력 등 투자에 대한 반사 이익을 노릴 수 있는 요소가 많다.

정부 예산을 활용한 공적인 투자 외에 민간기업도 여건만 조성된다면 투자에 나설 것이다. 대북경협 로드맵의 정립, 투자자산에 대한 권리와 합리적 기업 경영의 보장 등 북한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우리정부의 역할이  기대된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근면함에도 있지만, 베트남 전쟁과 중동 개발 특수 같은 대외적 요소도 한몫을 했다. 남북경협을 우리가 다시금 도약할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민족 사랑의 감성적 접근보다 냉철한 분석을 토대로 한 투자대상국으로 봄이 바람직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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