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 확정·법안 제정
2053년에야 영구 처분시설 운영…건식저장 불가피

중간저장시설 운영 전까지 월성·한빛 추가 확충 필요
현실적 대안 ‘건식 처분’…“사회적 합의 우선” 지적도


일반 산업활동에서 산업폐기물이 방생되는 것처럼 원자력을 이용한 산업 활동에서도 폐기물이 발생한다. 원자력발전소, 병원 및 연구소의 운영 중 방사성 물질에 의해 오염된 폐기물로써 방사선관리구역에서 작업에 쓰였던 작업복, 종이, 기기부품, 공구 등이 이에 해당된다. 보통 방사성물질을 제거해 재사용하지만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된 대상물이 방사성폐기물(이하 방폐물)로 분류된다.
이러한 방폐물의 처분은 유럽 및 일본 등 선진국의 처분장 운영사례에서도 입증됐듯이 원전과 마찬가지로 안전을 위주로 관리하는 완벽한 시설임을 인식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5월 산업통상자원부는 행정절차법 제46조에 따라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행정예고했다. 즉 미래세대를 위해 고준위방폐물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방식과 절차를 담은 사실상 최초의 ‘중장기 안전관리 로드맵’으로 공론화위원회가 고준위방폐물의 안전관리의 세부절차와 틀을 제시한 권고안을 바탕으로 정부 차원의 기본계획을 만든 것.
이어 고준위 방폐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부지 및 시설을 확보하기 위한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와 방식을 담은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가 확정한 고준위 방폐물 기본계획에 따르면 사용후핵연료의 경우 2053년에나 영구처분시설 운영이 이뤄지게 되며 처분시설 운영 이전에 포화가 예상됨에 따라 각 원전 내에 중간저장시설에 대한 추가 설치 문제 등이 ‘발등의 불’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은 = 지난 7월 열린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과 ‘미래원자력시스템 기술개발 및 실증 추진전략’을 심의·확정했다.
고준위방폐물 관리원칙은 ▲고준위방폐물은 국가 책임하에 장기간에 걸친 안전 관리 필요 ▲안전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국민건강과 환경에 대한 위해 방지 ▲관련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국민적 공감대 확보 ▲현 세대가 관리책임을 부담하고 관리비용은 발생자가 부담 ▲고준위방폐물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필요한 제반기술 지속개발 등으로 대변된다.
이에 따른 주요 추진과제를 살펴보면 우선 인허가용 지하연구시설(URL), 중간저장시설, 영구처분시설을 동일부지에 단계적으로 확보키로 했다.
고준위 방폐물 영구처분 시설 부지선정은 부적합지역 배제 → 부지공모 → 부지 기본조사 → 주민의사확인 → 부지 심층조사 순으로 진행해 약 12년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부지확보 이후 중간저장시설 건설(약 7년 소요)과 인허가용 URL(Underground Research Laboratory) 건설·실증연구(약 14년 소요) 동시에 추진한다. URL은 실제 처분조건과 유사한 지하환경에서 처분시스템 성능이 안전하게 구현되는지 실증하는 시험시설이다. 여기에다 인허가용 URL에서 실증연구 이후 영구처분시설도 건설(약 10년 소요)할 계획이다.
즉 2017~2024년에 부적합지역 배제, 부지공모, 주민의사 확인의 과정을 거쳐 2025~2028년 부지 심층조사에 들어간다. 부지 선정 정차만 약 12년이다. 이어 2029~2032년 지하연구시설 건설, 2029~2035년 중간저장시설 건설, 2029~2053년 영구처분시설 건설 등의 과정을 거친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정부는 고준위방폐물 관리시설 건설·운영과 관리기술개발에 필요한 전체 지출규모에 대해 주기적으로 검토키로 했다.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드는 비용의 산정기준(산정기준에 사용된 변수의 값을 포함)은 매 2년마다 재산정(방사성폐기물 관리법 시행령 제5조)한다. 소요재원은 방사성폐기물 관리법 제15조에 따라 원자력발전사업자에게 ‘사용후핵연료 관리부담금’을 부과·징수하게 된다.
아울러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의 실행을 위한 법적 뒷받침을 위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에 관한 법률(가칭)’ 제정을 추진키로 했다. 독립적인 실행기구인 관리시설전략위원회(가칭)와 행정지원조직인 기획추진단(가칭)도 구성·운영한다,
특히 원전내 사용후핵연료 한시적 관리방안으로 원전외부에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 확보시점 이전까지 불가피하게 원전부지에서 건식저장시설을 확충해 사용후핵연료를 관리키로 했다. 원전외부에 중간저장시설 등 관리시설 확보지연에 따른 것인 만큼 원전소재지역과 협의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지원한다.
한편 정부는 관리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에 관한 법률’의 입법과정에서 지역설명회 등 이해관계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해 나가고 5년 단위로 수립하는 이번 기본계획을 향후 현실 여건 변화 등을 반영해 보완해나갈 예정이다.
특히 ‘미래원자력시스템 기술개발 및 실증 추진전략’을 통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량 감축, 처분면적 축소, 관리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안인 사용후핵연료 처리(파이로)→TRU연료 제조→고속로 처리→고준위폐기물 처분에 이르는 미래원자력시스템 개발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 포화시점 다가오는 원전내 사용후핵연료 저장 = 2014년말 기준 서유럽이 115기가 가동해 13만톤, 북미가 118기에 12만톤, 동아시아가 106기에 3만톤, 기타 104호기에 6만톤 등 전 세계적으로 약 34만톤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의 4% 수준인 약 1만4000톤이 발생했다.
전 세계 31개국이 원전 내에 습식저장(Pool) 시설을 운영 중이며, 15개 국가는 원전 내에 건식저장시설도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연간 약 2000톤), 영국(연간 약 2400톤) 등은 상업용 재처리 시설을 운영 중이며, 일본은 재처리시설(연간 약 800톤) 운영 준비 중이다. 핀란드, 스웨덴, 독일, 캐나다, 스페인, 미국, 루마니아 등 7개국이 직접처분정책을 채택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직접처분 부지 확보하고 핀란드는 지난해 11월 영구처분시설 건설허가를 획득했다.
주요국가의 처분시설 목표 운영시점을 살펴보면 가장 빠른 나라가 핀란드로 2020년대 초다. 이어 프랑스가 2025년, 스웨덴이 2030년대초, 독일 2040년, 미국 2048년이다.
정부가 발표한 기본계획상 우리나라는 2053년경이다. 그렇다면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이 가동되기 전 사용후핵연료는 어떻게 보관해야 할까.
정부는 원전내 사용후핵연료 한시적 관리방안으로 원전외부에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 확보시점 이전까지 불가피하게 원전부지에서 건식저장시설을 확충해 사용후핵연료를 관리토록 하고 있다. 즉 원전외부에 중간저장시설 등 관리시설 확보지연에 따른 것인 만큼 원전소재지역과 협의해 합리적 수준에서 지원하겠다는 것.
그렇다면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 가동전에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내 건식저장시설에서 충분히 관리가 가능할까.
지난해 12월말 누계 기준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는 한빛 5693다발, 고리 5619다발, 한울 4856다발, 신월성 129다발 등 경수로형원전에서 1만6297다발과 중수로형원전인 월성에서 40만8797다발이다.
지난해 확정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신규원전 2기를 포함한 총 36기는 최초 가동연한까지만 운영하는 것으로 가정할 경우 올해 이후 각 원전에서 발생될 사용후핵연료는 경수로형에서 7만3110다발과 중수로형에서 25만5840다발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중수로형 월성원전은 2019년부터 포화가 예상되고 경수로형 원전은 한빛(2024년), 고리(2024년), 한울(2037년), 신월성(2038년) 순으로 포화가 예상된다.
700㎿급 중수로형 원전에서는 연간 핵연료다발 약 5000개를 사용해 약 100톤의 사용후핵연료를 방출한다. 1000㎿급 경수로형 원전은 연간 핵연료집합체 40개를 사용해 약 20톤 사용후핵연료 방출한다.
국내에서 중수로형 원전인 월성원전(1~4호기)은 2015년 기준 고준위 방폐물 저장용량은 49만9632다발로 이중 81.8%인 40만8797다발이 저장중이다. 단순 계산으로 3년이 지나면 더 이상 원전내에서 저장·관리할 수 있는 물량을 넘어선다.
경수로형인 고리원전도 포화용량이 86.4%에 달해 2024년부터 포화될 전망이다.

◆ 원전내 건식저장시설 확충은 어떻게 = 앞서 언급했듯이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원전외부에 사용핵연료 관리시설 확보시점 이전까지 불가피하게 원전내 건식저장시설 확충키로 했다. 또한 중간저장, 영구처분 등 관리시설 운영지연에 따른 것인 만큼 원전안의 저장시설 관리책임이 있는 원전발전사업자가 지역과 협의해 합리적 수준으로 지원키로 했다.
원전 내 건식저장시설은 국제적으로 기술 안전성이 입증된 건식저장방식을 채택, 확충케 된다. 전 세계 31개 원전 운영국 중 17개 국가(약 55%)가 건식저장시설을 운영중이다.
중수로형 원전은 저장밀도가 높은 맥스터를 적용하고 경수로형 원전은 경제성, 수용성 등을 고려해 저장방식을 선택키로 했다. 현재 월성원전은 사일로(silo)와 맥스터(Maxtor) 방식으로 저장중이다.
특히 중간저장시설 운영이전까지 월성(중수로) 16만5005다발, 한빛(경수로) 6681다발, 고리(경수로) 6644다발 등 추가 건식저장시설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현행 저장시설의 용량을 초과해 신규로 건설되는 건식저장시설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에 대해 지역과 원자력발전사업자간 합리적인 수준으로 협의를 통해 지원키로 했다. 지원체계는 관할지자체에 설치하는 특별회계의 세입으로 하고 지자체가 원하는 경우 주민재단 설립·운영 검토한다.
지원기간은 중간저장시설 또는 처분시설의 가동시점까지 한시적으로 지급키로 했다. 다만 지역이 원전내 저장시설의 운영기간 연장을 원하는 경우 이에 상응해 지원기간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기술은 일반적으로 안전성이 검증됐으며 대부분의 국가가 40년 이상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 방안이 발표되자 건식저장시설의 추가 건설을 우려한 기장, 경주, 월성 등 주민들을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커지면서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 고준위방폐물 관리에 대한 다양한 시각 = 정부가 최근 입법 예고한 고준위 방페물 관리절차법은 고준위 방폐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부지 및 시설을 확보하기 위한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와 방식을 담은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데 일단 그 의미가 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고준위 등 사용후 핵연료의 경우 2053년에나 영구처분시설 운영이 이뤄지고 이에 따른 중간저장시설 마련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12년 안에 고준위 방폐물 운영시설 부지선정과 적합성 평가, 주민의사 확인을 마무리하도록 하고 있으나 과연 12년 내에 부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거의 절망에 가깝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즉 짧은 부지선정과정을 고려하면 주민수용성을 확보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
세계 최초로 올해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착수한 핀란드의 경우 지질 조사를 거쳐 부지확정하기까지 23년이 걸렸으며, 국내의 경우 경주 중·저준위 방폐방 부지선정에만 20년이 걸렸다.
또한 사용후핵연료 처분과 관련,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에 대해 막대한 예산 투입과 효용성에 대해 반대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강정민 박사(미국 NRDC 원자력분과 연구위원)는 25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사용후핵연료 토론회에서 “사용후핵연료 심지층 처분 전까지는 지상에서 안전하게 저장(건식저장)하는 게안전문제(지진, 쓰나미 등 자연재해) 및 보안문제(테러, 사보타주)에 의한 냉각시스템 손상, 냉각수 손실 등의 우려가 없으며 물리적 손상 우려도 낮다”며 “사용후핵연료 심지층처분(지하 500m) 또는 심부시추공처분(지하 3~5㎞)은 방사성물질 장기 격리를 위한 안전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월성1호기 스트레스테스트 민간검증단 단장을 맡았던 김연민 울산대학교 교수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있어 재처리나 고속로에 집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며 “재처리를 통한 재활용은 준 국산연료의 확보이며 향후 수십년간 건식저장은 사용후핵연료의 신뢰성 있고 안전한 대안”이라고 밝혔다.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전반적인 것을 고려하면 지층처분장 쪽이 지상에서의 무기한 저장보다도 안전하며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와 직접처분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지층처분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라며 “주민투표나 국민투표 등 기본적인 컨센서스가 마련된다면 중간적 전략으로서의 건식 사용후핵연료 저장이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원재 원자력안전기술원 전문위원은 “고준위방폐물 관리 관련 현안들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창의적으로 해답을 만들어가야 하는 문제”라며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요한 기술적, 정책적 및 사회적 현안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소통을 근간으로 다양한 해결방안을 도출한 후 이해관계자간 숙의적 논의를 통해 최적의 해결을 찾는 사회적 합의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당장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을 가동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현실적인 차선책으로 건식저장이 필요한 상황으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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