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대한전기협회 김종해 KEPIC처장

지금은 위기가 아니라 재정비 단계…문제점 보완에 노력
중소·중견기업, KEPIC 이해·인프라 구축 등 스펙 쌓아야
KEPIC-Week 통해 각 이슈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주력

전력산업기술기준(KEPIC, Korea Electric Power Industry Code)은 원자력·화력발전소, 송배전설비 등 전력산업 설비와 기기의 안전성, 신뢰성 및 품질확보를 위해 설계, 제조, 시공, 운전, 시험 및 검사 등에 대한 방법과 절차를 규정한 전력산업계 민간단체표준이다. 대한전기협회가 정부로부터 이러한 KEPIC의 개발 및 유지 전담기구로 지정된 지 올 해로 18년째다. 이제 내 후년인 2015년에 20년史가 발간된다.
이 기간은 표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매우 짧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KEPIC이 우리 전력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짧은 시간에 관계자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펼쳤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원전 비리 사태로 인해 KEPIC의 움직임은 주춤한 상태다.
하지만 전기협회 KEPIC처 김종해 처장은 현재의 상황을 ‘위기’가 아니라 ‘숨고르기 단계’로 표현한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재정비의 시간이라고 삼고, 그동안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또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파악해 심기일전하겠다는 의미이다. 특히, 오는 27~30일 정선 하이원리조트 컨벤션호텔에서 열리는 전기계 최대 행사인 ‘2013 KEPIC-Week’를 통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최선책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이다. 다음은 김종해 처장과의 일문 일답.

◇ 현재 KEPIC이 어디까지 적용되고 있는지 = KEPIC은 원자력·화력발전소, 송배전설비 전력산업 설비에 적용이 되는데, 안전성의 비중이 클수록 KEPIC의 적용률도 높은 편이다. 특히 원전의 경우에는 신고리 1,2호기 이후 신규 건설되는 모든 원전에 전면 적용되고 있다. 2009년 수주한 UAE 원전의 경우도 KEPIC이 적용되고 있다.

반면 기존 운영 중인 원전은 좀 다르다. 울진 5,6호기 이전 20기의 경우 미국이나 캐나다의 기준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생 그 기준을 따를 수는 없다. 이에 10년마다 진행하는 원전 장기가동중검사에서 변경해 KEPIC을 적용하고 있다. 현재 13기에 대한 적용을 끝냈고, 2015년이면 20기에 대한 적용이 마무리된다. 물론, 보수·검사시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KEPIC을 적용하는 경우도 있다.

화력발전은 또 개념이 원전과 다르다. 화력의 경우에는 원전과 달리 법적인 강제 사항이 아니다. 즉, 사업자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현재 2010년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 남부발전의 영월화력이 최초로 KEPIC을 전면 적용한 사례이고, 최근 건설 중인 중부발전의 신보령 1,2호기는 1000MW급으로서는 처음으로 KEPIC을 전면 적용한 사례다. 하지만 화력발전의 경우 주기기 등이 해외에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KEPIC 적용에 한계가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편, 송배전 분야의 경우에는 또 문제가 다르다. 한전의 경우 IEC 국제표준을 많이 채택하고 있는데, KEPIC은 ASME, IEEE 등과 같이 민간표준이기에 현재로서는 극히 일부에서만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 KEPIC 적용시 장점은 무엇인지 = KEPIC은 성능보다는 안전성을 목표로 하는 기준이라 할 수 있다. 성능은 자동차 차체 등과 같이 그 회사의 고유한 설계 특성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안전성에 문제가 있으면 그 제품은 사용하지 못한다. 그 제품이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KEPIC의 역할이다.

사실 과거에는 표준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물건을 만들어 놓고도 못 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는 사람이 더 많이 생겼다. 이에 제품에 대한 기본적 특성에 대한 하자 비율이 많이 떨어졌다. 즉 실패 비율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것이고, 이는 곧 실패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KEPIC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기술력 및 표준 이해력 등은 돈으로 따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KEPIC은 산업 활성화에 많은 도움을 준다. 사실 국내 업체들의 경우 원자력 분야에 대해서는 아예 처음부터 어렵다는 인식을 갖고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KEPIC을 통해 능력만 있으면 참여할 수 있게 됐다. KEPIC이 업체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고, 또 이러한 업체들의 시장 참여는 결국 최종적으로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원가를 절감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몇 %의 비용 절감이라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사실 이러한 효과들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KEPIC이 요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데 = KEPIC에 대한 관심은 초기부터 쭉 이어오다 2009년 UAE 원전 수주를 계기로 폭증했다. 국내의 경우 침체에 있던 조선산업에서 원전사업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다.

특히 당시 세계적으로 300~600기의 원전을 건설하겠다는 계획들이 나오면서 세계적으로 원전산업은 부흥기가 열렸다. 그런데 사실 원전을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이를 따라잡지 못했고, 안전성도 확보할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2011년 일본 원전 사태로 몇 국가에서 원전 건설을 포기하면서 위축 단계로 접어들었다. 국내의 경우에는 올해 원전 비리 사태로 인해 더욱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KEPIC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는 원전산업이 위축되는데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 있어도, 숨고르기 차원에서 보면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본다.

분명한 것은 이럴 때일수록 기초를 다지는데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들, 특히 중소·중견기업들의 경우 KEPIC을 잘 이해하는데 노력하고 인프라도 적극 구축하는데, 즉, 원전산업에 대한 스펙을 쌓는데 주력해야 한다. 또 사람도 키워야 한다. 이러한 기초 체력만 잘 다져 놓는다면 향후 기회는 얼마든지 온다.

◇ UAE 원전에서 KEPIC이 적용중인데 현지 반응 및 향후 해외 진출 가능성은 = 사실 UAE 원전 수주 당시 현지 전문가들은 KEPIC에 대해 정보가 없었다. 따라서 매우 어려운 전개가 예상되기도 했는데, 의외로 일은 쉽게 풀렸다. 전기협회의 경우 현재 MDEP(다국간설계평가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KEPIC을 세계적 민간 단체표준인 ASME 등과 동일한 위상을 갖추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UAE 표준 책임자가 MDEP에 참여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 책임자가 KEPIC에 대한 지식이 있어 어렵지 않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KEPIC에 대한 현지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이번 케이스는 국제협력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한편, 해외 시장 진출이 경우 KEPIC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경우는 쉽지 않은 편이다. 아울러 원전, 화력 등의 분야에서 통째로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쉽지는 않다. 이에 통째로 갈 수 없다면 부분적으로 참여하는데 대한 정책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 KEPIC-Week 행사가 27~30일 열리는데 = 이번 KEPIC-Week 행사의 경우 요즘 분위기상 조금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가 되기는 한다. 그러나 KEPIC-Week의 경우 충성스러운 참가자들이 매우 많은 편이다. 이는 행사의 내용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그 내용들이 자신의 업무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다. 즉, 관계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주제들이 그 만큼 많다는 것으로, 그런 의미에서 이제 KEPIC-Week는 정보 공유의 장으로 뿌리 내렸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 행사의 경우에는 겉모습보다는 내용적으로 업그레이드 해보자는 취지에서 조금 서둘러 준비했다. 그래서 기기검증, 공조 등 이슈가 되는 분야에 대한 기술 교류 활동을 KEPIC-Week에서 진행하고자 다양한 세션들을 준비했다. 기술적 정보 교류도 중요하지만, 어떤 이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KEPIC-Week 행사의 진짜 개최 이유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번 행사에는 학생들을 위한 ‘Student 세션’도 처음으로 준비했다. 이는 전기, 기계, 원자력 등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한 것으로, 한마디로 미래를 위한 세션이라 할 수 있다.

◇ KEPIC의 최근 현황 및 2020 비전의 목표는 = 지속적으로 제·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환경표준, 지능형전력망, 성능시험표준개발 등의 분야에 대한 제·개정 작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KEPIC 움직임의 특징이라고 하면, 현장 여건을 반영해주는 작업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무리 좋은 표준도 현장에서 쓸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국에서 바꿨으니 우리도 바꿔야지 하는 수동적 개념에서 벗어나, 우리가 해보니 좋은 점이 많더라며 외국에 제안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KEPIC 2020 비전’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2020 비전의 목표는 국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갖는 수준으로 KEPIC을 업그레이드 하는데 있다. 이는 KEPIC을 국제표준화하겠다는 것은 아니며, 세계 어느 시장에 내놓더라도 KEPIC이 문제없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이다.

◇ 이번 원전 사태로 인하여 KEPIC의 운영 방향에 변화가 있는지 = 물론 있다. 사실 전기협회의 경우 KEPIC에 대한 저변 확보 위주의 업무를 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로 기대 이상으로 사회적 책임도 많음을 느꼈다. KEPIC이 부정부패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더욱 객관적이고 공정한 업무를 수행해 나갈 것이다. 특히, 성과 이면에 있는 각론적인 문제점들을 찾아 보강하는데 노력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전문성을 좀 더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전기협회의 경우에는 스텝 조직이지만, 자신이 맡은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산업계가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조직의 업무 편성도 이번에 바꿨다. 이는 기술과 행정관리 분야로 나눈 것인데, 기술의 경우에는 앞서 설명한 전문성을 강화하는데, 행정관리는 순환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또한 대외사업팀도 신설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제협력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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