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경쟁시스템은 투자보다 단기 이윤에 관심 높여 / 정부-민영화 후 대비책 마련 등 원칙추진 의사 비쳐

최근 발생한 사상 초유의 미국 북동부·캐나다 정전사태 원인과 관련한 전력산업 민영화 논란이 미국 내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한층 달아오르고 있다.

주요 송전망의 노후와 부족, 다수의 계통운영자 간의 의사소통 미흡 등이 정전원인으로 분석되고는 있지만, 이러한 원인들은 전력회사들이 투자를 기피하고 이익만을 쫓았기 때문에 발생했고, 이런 현상은 궁극적으로 전력회사들이 민영화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측은 최근 한전 및 전력거래소에서 발표하듯 국내의 상황은 미국과는 다르고,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며 구조개편의 중단은 없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발전부문의 경우 분할돼 민영화를 앞두고 있기는 하지만 1번 타자였던 남동발전 매각이 잠정 중단됐으며, 한전의 배전부문 분할도 구체적인 합의점 없이 표류하고 있는 등 현재 답보상태에 있는 전력산업구조개편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우선 전국전력노동조합은 미국 정전사태가 발생한 직후 성명서를 발표하고, "그동안 전력산업은 사기업의 이윤 추구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공적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경쟁시스템의 도입, 공기업의 사유화(민영화)를 추진하는 추세로 전환되면서 많은 문제가 야기돼 왔다"고 밝히고, 이번 정전사태는 무원칙적인 전력산업구조개편의 추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전력노조 측은 보도에 따르면 발전소 또는 일부 송전시스템의 고장으로 일시적인 공급부족이 발생할 경우 자동으로 일부 수요를 차단(감소)시킴으로써 전력시스템을 안정시켜 대규모 정전을 예방할 수 있는 장치가 설치돼 있는데도 일부 발전소 또는 송전시스템의 고장으로 말미암아 연쇄적인 고장이 발생하였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전력회사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거론했다.

전력노조는 발전회사들이 고장에 대비한 공급 예비력을 확보하지 않았거나 또는 캘리포니아의 경우와 같이 고의적으로 공급력을 조작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또한 지역 배전회사들의 경우에도 이윤 극대화를 위해 전력시스템 고장시 자동으로 운전되는 부하차단 시스템 운영에 협조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력노조 뿐만 아니라, 한전 및 각 발전사 등 전력관계자들은 전력설비에 대한 투자 미흡을 이번 정전사태의 가장 큰 원인으로 들었다.

전력산업구조개편으로 도입된 경쟁시스템은 공급이 부족할 경우 오히려 가격이 올라 전력회사의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인 만큼 건설기간이 5∼10년 정도 소요되며 투자회수기간이 장기간인 전력산업에 있어서 투자를 통한 전력공급을 확대하기보다는 오히려 투자를 하지 않음으로써 단기적인 막대한 초과이윤을 누릴 유인이 더 크기 때문에 이번의 정전 사태 또한 투자회피가 그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전력회사들이 민영화 이후 장기간이 소요되는 투자 보다는 기존 설비 운영을 통한 이익만에 관심을 두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이를 적절히 규제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큰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미국, 캐나다의 정전사태로 미국의 경우만 피해가 6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돼고 있다. 이처럼 국가기간산업인 전력산업에 '경쟁'이라는 개념의 도입은 신중하지 않으면 엄청난 재앙으로 되돌아오는 만큼 당장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전력노조 측은 강조한다.

반면 정부측의 견해는 다르다.

최근 산업자원부가 대규모 정전 등 비상사태에 대비해 민영화 후 전력사업자가 예상 전력 판매량보다 일정량 이상의 전력을 더 생산하도록 여유설비를 의무적으로 갖추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보면 알 수 있듯 정부는 전력산업의 민영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계속해서 주장해 온 바와 같이 전력예비율을 각종 제도 및 규제를 통해 확보하면 되듯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면 될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또한 국내 전력계통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고장 파급 효과를 막을 수 있는 최상의 장치를 설치하는 등 만반의 대책을 갖고 있는 만큼 미국 사태와 같은 대규모 정전과 같은 경우는 겪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미국의 사태를 국내 사정에 무리하게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이미 미국 내에서는 우리 정부 측 견해와는 달리 정전사태의 주원인이 민영화로 귀결되고 있다. 미국 현지 언론들은 물론 국내 언론 대부분이 민영화된 전력회사들이 투자를 게을리 하는 등 구조개편 추진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주장이 밀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전력노조 측은 놓칠 리가 없다. 전력노조는 미국과 캐나다의 대규모 정전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현재 추진 중인 한국전력 배전분할 민영화 등 우리나라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전면 재검토 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아울러 전력노조는 미국과 캐나다의 대규모 정전사태의 원인분석을 위한 노사정과 학계를 포함한 범 국가적 차원의 조사단을 구성할 것을 제의했다. 이러한 노조측의 대응에 대해 향후 정부가 어떤 대응책을 들고 나올지에 관심이 집중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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