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주가 창조되기 전, 이 세계는 카오스였다. 혼돈 바로 그 자체이다. 그것이 이윽고 무엇인가의 힘에 의해 에너지의 얼룩이 생기고 드디어 힘의 흐름, 즉 에너지의 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바로 이로 인해 이 우주에 불평등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힘의 편차로 또 죄악시 까지 생각하는 불평등이야 말로 바로 우주만물과 지구가 있게 한 근본이라는 사실을 우선 보고자 한다. 이 혼돈의 죽음에 관한 옛 중국의 우화 하나를 더해 보자.

옛 중국의 남해의 제왕 숙(?) 과 북해의 제왕 홀(忽)이 중앙의 제왕 혼돈(混沌)의 집에 왔다가 그의 융숭한 접대에 대한 고마움으로 사람들은 모두 일곱 개의 구멍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쉬고  있는데 이것으로 음덕을 좀 갚는다고 생각하고 혼돈에게 7개의 구멍을 하루에 한 개씩 뚫어 주었는데 그러나 칠일 만에 혼돈은 죽고 말았다.

결국 자연이 아니고 인위의 어리석음을 이야기 한 것 이지만 세상에는 이러한 인위에 의한 어리석음 즉 불평등이 더욱 중요 할 수도 있다고 생각 된다. 
무심하게 보이는 자연 속에서도 수많은 불평등의 현상이 숨겨져 있고 그것이 묘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분자의 세계도 평등하지 않다고 한다. 상온의 공기 분자들은 1초에 무려 50억 번이나 충돌하고, 그때마다 서로 에너지를 교환하기 때문에 분자들의 평균 에너지의 값은 공평하게 같아진다고 한다.

공기 분자들은 상온에서 음속에 해당하는 평균초속 350M의 속도로 방안을 날아다니지만, 섭씨 영하 200도로 차가워지면 돌아다닐 힘이 없어서 서로 뒤엉킨 액체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자들은 모두 똑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을까?

실제로 같은 물체에 속해있는 분자들이라도 총알처럼 빠르게 날아다니는 분자들도 있고 꼼작 못하는 분자들도 있다. 인간사회에서와 같이, 분자의 세계에서도 온도만 정해지면 볼츠만 분포라는 규칙에 따라 부유한(에너지를 많이 가진)분자와 가난한 분자의 비율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도 파레토 법칙에 나타난 바와 같이 대체적으로 상위 20%의 사람이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고 있듯이 어떤 물체에서도 상위 20%의 분자들이 총 에너지의 46%를 차지하고 하위 20%분자들은 총에너지의 4%를 나누어 갖는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오묘한 자연의 법칙인가? 그러나 평균보다 100배 이상의 에너지를 가진 분자는 있을 수 없다고 하니, 인간 세상보다는 한결 더 평등하다고나 할까? 분자 세계에서는 엄청난 부나 권력을 가진 거부나 독재자는 없다는 뜻이 되는 것이니 참으로 오묘하기만 하다.

오묘함 만으로 끝나는게 아니고 우리가 주목해야할 더욱 중요한 결과는,  만약에 볼츠만 분포에 따르지 않고 에너지 분포가 평등하다면 섭씨 200도가 되어야 얼음이 녹고, 3,000도가 되어야 물이 증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평균 에너지보다 11배의 에너지를 가진 액체의 물 분자는 훨씬 자유로운 기체로 증발할 수 있고, 얼음 속에 갇힌 물 분자도 평균보다 2배의 에너지만 비축하면 녹아서 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구는 빙하가 녹지 않아 얼음 덩어리에 불과할 뻔 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신비로운 생명의 조화로움은 모두 분자 세계의 불평등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1초에 서로 50억 번이나 충돌, 서로의 에너지를 교환함으로써 겉보기에 평등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내부의 에너지 분포가 불평등하다 라는 것이 바로 ‘볼츠만 분포’라인데, 이것이 바로 이 우주를 우주답게 하고 지구를 지구답게 하여, 그 속에서 생명이 태어나고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 갈 수 있게 하고 있으니, 천지자연의 오묘한 조화야 말로 신의 조화인지, 우주의 섭리인지 그 결과에 경탄할 뿐이다.
 
인간 세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인간이 처음 지구 상에 그 모습을 들어낼 때부터 차이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조그만 힘의 차이가 부의 차이를 가져오고, 조그만 지혜의 차이가 권력의 차이를 가져오게 했지만, 그렇게 해서 태어난 불평등이야 말로 다시 인간 세계를 힘차게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요, 묘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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