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800kV급 기기 생산 능력은 세계에서도 그리 많이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력 시설 분야에서 이제 국내의 기기 생산과 건설 능력 및 관련 장비 생산 분야까지 과히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는데 이는 오로지 800kV 시스템 건설로 유발된 영향이라 확신한다.

1998년에는 당초 765kV 양 계통을 준공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간 수요의 감퇴가 있었고 민원과 기술적인 미비점을 충분히 검토하여 나감에 따라 계획을 조정 1999년~2000년으로 준공을 연기하였다.

어쨌거나 1998년에 들어와서는 이제 모든 것이 정상 궤도에 진입 순조롭게 진행되어 나갔다.

다만 고질적 민원이 문제였는데 이는 오직 시간과 인내, 끈기뿐이었다.

1997년 후반부부터는 일부지역에 가선(架線)이 시작되었다.

가선 작업도 상당히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서 추진되었는데 6B 가선이라는 초유의 공사 형태이며 또 이에 따른 가선 장비 문제, 긴선도, 연선속도, 적정이도 숙지 등 동력학이 작용하는 분야이므로 관련자들은 사실 애간장이 타는 시간이요 작업이다.

물론 어느 정도 준비를 갖춘 후 일본의 용역단의 자문도 받고 예행 연습도 많이 한 덕분에 큰 문제없이 준비 작업을 완료하였으나 어느 회사가 1차로 가선을 할 것이냐가 큰 문제이고 관심꺼리였지만 결과는 모두가 잘 되었다.

한 번 시작하고 나서는 모두가 큰 어려움이 없이 착착 진행되어 나갔다. 전력선과 금구류도 처음 개발되어 초기 약간의 문제는 있었지만 곧 시정되어 문제가 없었다.

사실 무수한 고개를 넘고 넘어 이 단계까지 왔지만 꿈같은 세월이었다.

1998년 5월 말 나는 회사의 명에 의거 서울전력관리처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어 기록은 여기에서 마치게 되겠으나 그렇게도 어렵게 보였던 사업을 계획 추진하여 건설사업을 본궤도에 올려놓고 이제 순조로이 끝내기 수순만 밟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내 생애 한전 입사 후 30여년이 넘는 동안 가장 어려웠고 또 보람 있었던 시기가 아니었던가 싶었다.

한국에서 아시아에서 아니 세계에서 처음으로 765kV 2회선 철탑을 건설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기술 실무자들의 피나는 노력과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만 그 선두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관련 전력업계의 노력도 대단했으며 사내에서도 초대형사업의 추진이라는 점에서 알게 모르게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다. 모두에게 감사할 뿐이었다.

2000년대 초반 765kV 상업운전에 들어갈 때에는 나는 퇴직 후였지만 그 감개는 남달랐다. 

수많은 사람이 이 사업에 기여하고 이 사업으로 국가적으로 중전기계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지만 나 자신에게도 나의 전력생활 30년을 결산하는 크나큰 일이요, 마지막을 장식하는 나에게 주어진 크나큰 선물임에 틀림없는 일일 것이다.

1992년 처음 765kV 계통전압추진반장으로 명 받았을 때는 어렵고도 크나큰 숙제를 앞둔 초등학생처럼 어려웠지만 1998년 말 되돌아보니 큰 무리 없이 대사업을 거의 마무리하고 성공리에 사업을 추진, 이제 선로는 대부분 준공이 되었고, 변전소 설치까지 멀지 않아 준공을 앞둬 765kV 운전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대업을 마치고 일류기업에 취업을 한 대학생처럼 스스로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끝>

※ 장문의 기고를 송고해주신 한엽 한전 前 처장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작권자 © 한국전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