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 한국수력원자력(주) 방폐물전략실장

▲ 김원동 실장
◆ 개 요
19년간 표류하던 방사성폐기물(이하 ‘방폐물’) 처분시설 확보문제가 2005년도에 치열한 유치 열기 속에 주민투표를 거쳐 경주지역으로 결정된 바 있다. 국가적 난제였던 방폐물 처분시설을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성과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고준위방폐물이라 할 수 있는 사용후연료의 중간저장 문제가 배제되고 중·저준위 방폐물에 한정되었다는 점에서 더 큰 아쉬움과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다.

사용후연료 특성
사용후연료는 원전에서 전기를 만들기 위하여 원자로에서 일정기간 핵분열을 하며 연소된 연료를 말하며[그림-1,2], 원전 1기당 연간 발생량은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는 경수로(고리, 영광, 울진)가 약 19톤, 천연우라늄을 사용하는 중수로(월성)가 약 95톤에 이르며, 현재 각 원전 부지내에서 임시로 저장 및 관리하고 있다.
<그림-1> 경수로 연료의 사용전후 조성변화 <그림-2> 중수로 연료의 사용전후 조성변화

◆ 우리나라의 사용후연료 정책 및 관리현황
우리나라는 사용후연료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며, 다만 제253차 원자력위원회(2004.12.17)에서 사용후연료를 2016년까지는 각 원자력발전소 부지내에서 관리하고, 중간저장시설 건설 등을 포함한 2016년 이후의 사용후연료 관리정책은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하에서 추진하되 적기에 결정하기로 의결하였다. 이 정책은 관망정책(Wait and See Policy)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국제동향 및 기술개발 추이 등을 보아가며 중장기적으로 정책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각 원전에서는 발전소 내 사용후연료 저장능력을 확충하기 위하여 기존의 저장대를 조밀저장대로 교체하거나 호기간 이송, 건식저장시설 추가 설치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고리와 영광원전은 2016년까지 저장능력을 이미 확보하였고 울진과 월성원전은 추진중에 있다. 한편, 정부(산업자원부)에서는 사용후연료에 대한 국민 수용성 확보와 정책마련의 시급성이 대두됨에 따라 금년 2월부터 국가에너지위원회 산하에 갈등관리전문위원회를 두고 사용후연료 공론화TF(Task Force)를 구성하여 사 용후연료의 공론화 방안과 중간저장 및 최종관리방안 등에 대하여 활발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 사용후연료 정책의 종류와 국제동향

사용후연료 관리정책에는 사용후연료에 포함된 우라늄과 플루토늄 등을 추출하여 연료로 재활용하기 위한 재처리와, 사용후연료 자체를 폐기물로 간주하여 직접 땅속 깊이 영구 처분하는 직접처분 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편, 재처리나 직접처분을 하기 위해서는 사용후연료의 붕괴열 및 방사능을 감소시켜야 하므로 일정기간(30~50년) 동안의 저장은 필수적이다.
재처리와 직접처분 중 어떤 관리정책을 채택할 것인가는 그 나라의 에너지 정책, 경제성, 환경문제, 국민의 수용태세 등 자국의 제반사항 뿐만 아니라, 핵확산 문제와 관련된 정칟외교적 요소 등 국제적 상황까지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등 매우 복잡한 양상을 지니고 있다.
현재 세계 31개 원전 운영국가 중에서 10여개 국가만 사용후연료 관리정책을 확정하였으며, 우리나라를 포함한 20여개 국가는 관망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재처리(재활용) 정책 국가는 프랑스, 영국, 일본 등이 있으며, 직접처분 정책은 독일, 스웨덴, 핀란드 등 대부분 원전 추가건설 계획이 없거나 소규모 원전 운영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현재 직접처분 정책하에 영구처분장까지 확보(유카마운틴)하여 건설을 추진중에 있으나, 최근에는 사용후연료의 재활용 필요성과 처분장 추가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한 고준위폐기물 발생량의 최소화 필요성 등이 대두되어 재처리 정책으로 전환을 검토 중에 있는 등 대규모로 원전을 지속 운영하는 국가들은 재처리 정책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 재처리(재활용) 정책의 장점 및 국내 전망
최근 정부(과학기술부)에서는 핵연료 재처리 및 형상변경에 대하여 제한하고 있는 한·미 원자력협정(1973년 발효)의 재개정을 추진하여 사용후연료의 건식 처리에 대한 한·미 공동연구 등의 구상을 밝힌바 있어 우리나라 원자력계에 재처리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게 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1997년부터 연구하고 있는 파이로 프로세스(건식) 재처리 기술은 플루토늄을 넵트늄, 큐륨 등과 함께 추출하기 때문에 플루토늄만 따로 분리하여 무기로 전환할 우려가 없어 미국도 우호적인 시각으로 보는 기술이다. 직접처분과 비교하여 재처리 정책의 경제성만 어느 정도 확보되고 국제사회의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향후 재처리 정책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어 우리에게 적합해 보인다.
우선 우라늄 및 플루토늄 등을 추출하여 제 4세대 원자로의 연료로 재활용하면 현재 원전에 쌓이는 사용후연료만으로도 약 1000년간 원자력발전이 가능하므로 요즘 같이 전 세계적으로 원전 수요 증가에 따른 우라늄 가격 상승추세가 지속된다면 향후 에너지 확보 측면에서 매우 좋다. 또한 긴 수명의 방사성물질을 재활용해 태움으로써 고준위폐기물의 발생량을 1/20정도로 줄이고 안전관리 기간도 대폭 감소시킬 수 있으며, 국내에 재처리시설을 건설할 경우 시설 내에서 사용후연료의 저장이 가능하므로 별도의 중간저장시설이 불필요하다는 장점도 있다.

◆ 원전 선진국의 정책추진사례
해외 원전 선진국의 경우 사용후연료 정책 및 관리시설 부지 선정 등을 위해 어떻게 추진하였는지 대표적인 몇 나라만 살펴보기로 한다.
미국은 사용후연료의 직접처분 정책을 견지하고 있으며, 유카마운틴에 영구처분장 부지를 확보한 나라이다. 1982년 방폐물정책법을 수립하면서 사용후연료 처분에 대한 규정과 요건을 제정하였다. 핵심 내용으로는 처분전담기관, 재정, 처분장 부지선정절차 및 일정이 포함되어 있으며, 에너지부(DOE) 산하에 사용후연료의 처분 전담기구(OCRWM)를 설립하였다. 이 기구는 관리처분 집행의 조정, 처분비용의 산정, 처분기금의 조성, 비용의 적정성 평가 및 변경 등 처분계획의 시행을 담당하도록 되어있으며 또한, 방폐물정책법은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 사용후연료의 수송, 저장, 처분시설에 대한 허가권을 부여하고, 환경청(EPA)에 규제기준을 수립하는 역할을 부여하였다. 동 법에 근거해 3개 부지에서 부지특성조사를 시작하였으나 1987년에 법이 수정되어 유카마운틴만 부지특성조사를 계속하여 2002년에 유카마운틴을 사용후연료 처분부지로 확정하는 등 법 제정부터 처분장 부지 선정까지 20년이 걸렸다. 유카마운틴 처분장은 2008년에 인허가를 신청하여 2017년 운영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프랑스는 라하그 재처리 시설에서 연간 1,600톤 규모로 재처리하고 있는 대표적인 재처리 정책 국가이다. 1980년대 고준위폐기물 처분장 부지선정 활동이 국민의 강한 반대로 좌절된 바 있으며, 전담기관(ANDRA)의 설립과 부지 선정시 주민의견 수렴 및 과학적 타당성 검토 등에 대한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제안에 따라 1991년 방폐물관리연구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률에 따라 주민 의견수렴 등의 과정을 통해 1999년 Bure 부지에 지하연구시설 건설을 결정하고 건설작업과 지하연구를 수행 중에 있으며, 15년간 방폐물 관리방법에 관한 연구 수행결과를 토대로 2006년에 고준위폐기물관리법을 제정하였다. 프랑스는 고준위폐기물 처분의 타당성 확인과 국민적 합의를 위하여 주민 투표 대신 장기간의 연구수행 결과를 의회에 제출하여 최종 결정하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2002년 11월에 고준위 방폐물 관리에 대한 기본골격을 정한 핵연료폐기물법(NFWA)을 제정하고, 방폐물관리기구(NWMO)를 설립하여 3년간 대중 및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공론화를 수행하였다. 동 기구에서는 2005년 11월에 최종관리방안으로 “30여년 소내저장 → 30여년 집중저장 → 심지층 처분” 하는 단계적 접근법을 제시하여 금년 6월 정부에서 검토 후 승인하였다. 캐나다의 사례는 법을 제정하고 공론화 전담기구를 설립한 후 3년간의 준비를 거쳐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하고, 기술적으로 안전하며,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도 경제적인 사용후연료의 장기 관리 방안을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여 제시함으로써 비교적 단기간에 전문가 집단 뿐 아니라 다수 국민의 의견 수렴 형식을 거쳐 사용후연료 관리정책의  근거를 확보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비핵화 선언을 했지만 역대 총리들의 일관된 노력으로 핵 비보유국으로는 유일하게 재활용 기술 허용 국가가 되어 현재 도까이무라와 로카쇼무라에 재처리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사용후연료에 대한 재처리 초과분은 원전 부지와 재처리시설 내에서 저장하고 있으며, 중간저장시설 부지 확보를 추진하여 2005년에 무츠시를 확정·공포한 바 있는데, 무츠시의 유치전략은 향후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이 ‘원자력정책연구회’라는 기구를 구성하여 정치인들의 원자력에 대한 이해 제고와 사용후연료의 재활용에 대한 홍보에 활용하고 있는 사례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제도로 여겨진다.

◆ 체계적이며 원칙을 갖고 공론화 추진 필요
이와 같은 외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점을 요약해 보면 사회적 공론화 추진 이전에 법과 제도를 갖추고 최적화 했다는 점, 법과 제도에 근거하여 공론화 추진 주체를 명확히 하고 이에 대해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였다는 점, 대중 및 이해관계자들이 그 역할에 맞도록 합리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현실적 절차와 참여 공간을 마련하였다는 점, 공론화를 통해 도출된 의견에 대한 정책 반영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현재 우리 정부에서 추진중인 공론화 기본원칙(안)을 보면 투명하고 공개적인 논의, 숙의적이며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논의, 일반 대중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 등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금년중으로 방폐물관리 전담기구의 운영 등을 명시한 방폐물관리법의 제정도 추진중에 있어 선진 외국의 사례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 자원의 시각에서도 바라보고 적기에 정책 결정해야
2016년부터는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이 포화에 이르게 되므로 원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2016년 이후의 사용후연료 저장 공간 확보가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원전부지 외에 특정 부지를 선정하여 중간저장시설을 추진할 경우 부지선정 추진 단계부터 중간저장시설의 설계·인허갇건설 및 운영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기간을 감안해 볼 때 2008년 말에는 최소한 중간저장에 관한 방침만이라도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선진 외국에 비해서는 법 제정 추진이 늦어지고, 공론화 추진 일정이 촉박한게 사실이나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하고자 하면 이루어 내는 우리나라 국민의 강점을 살린다면 결코 늦었다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사용후연료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으로 방치될 것이 아닌 에너지 전쟁에 대비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라는 시각으로 바라보고 정책 결정에 참여할 때 국가 및 국민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후연료 관리정책이 적기에 결정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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