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업의 황금기를 지나며 식상한 소재에 빈곤해 하던 헐리웃의 메이저 스튜디오에서는, 한창 인기를 끌어 두터운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던 코믹스 캐릭터들에 눈을 돌렸다. 그리해 탄생한 캐릭터들이 <슈퍼맨>과 <배트맨> 등. 이들은 3∼4개의 속편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소재 빈곤에 허덕이고 있던 헐리웃을 구원했으며, 이미 책으로 익숙해 있던 캐릭터들의 ‘움직이는’ 활약상에 관객들도 탄성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코믹스 계의 양대 산맥 중 하나였던 DC코믹스에서 배출해 낸 이들 캐릭터는 90년대 중반, <배트맨 포에버> 시리즈가 나올 때까지 굳건히 블록버스터 계를 지탱해 나갔다.

이렇듯 8∼90년대가 <슈퍼맨>, <배트맨>으로 대변되는 DC코믹스 캐릭터의 시대였다면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블레이드>를 필두로 한 마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98년 <블레이드>를 시작으로, <엑스맨>, <스파이더맨>, <데어데블>, <헐크> 시리즈 등 이전의 <슈퍼맨>이나 <배트맨>보다 훨씬 세련되고 감각적인 영상과 현란한 액션, 강력한 파워를 바탕으로 한 이들 마블의 캐릭터 무비는, 그 사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 헐리웃의 특수효과 기술과 맞물리며, 관객들에게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거대한 일대 ‘혁명’을 몰고 온 것이다.

<스파이더맨>, <엑스 맨>, <헐크>등을 연달아 세상에 내놓은 마블은 헐리웃 블록버스터에 없어서는 안될 역사적인 영웅들을 창조해 냈다. 완벽한 캐릭터들이 선사하는 강렬한 액션의 카타르시스는, 마블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헐리웃의 최첨단 특수효과와 만나며 ‘코믹 북’이라는 한계를 극적으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영화 <데어데블>의 원작이 된 마블 코믹스의 ‘Daredevil: The Man Without Fear’는 코믹북의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1964년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낸 이후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로 꼽히고 있다. 전 세계인들이 이미 감탄해 마지않은 슈퍼히어로 데어데블은 40여년을 책 속에만 묻혀 있었어야 할 정도로 현란한 액션은 물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특수효과를 필요로 했고 마침내 2003년, 영화 <데어데블>은 기대 이상의 완벽함으로 스크린에서 관객들을 맞이한다.

지난 2월 14일 미국, 캐나다 등 북미와 영국에서 첫 공개가 된 <데어데블>은 양국은 물론 이후 모든 세계대륙을 누비며 극장들을 잠식하고 있다. 개봉 이전부터 이미 각종 언론들을 통해 호평을 받아온 <데어데블>은 개봉 당일인 금요일 하루 동안만 1,900만 달러, 개봉 주말에 이미 4,730만달러의 개봉수입을 기록하며 신화적인 흥행신화를 연일 갱신하고 있다. 이는 역대 금요일 개봉작 중 <한니발>에 이은 2위의 흥행 수치이며, 통상 ‘비성수기’로 치부되던 2월 극장가에도 관객들을 북적이게 한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이미 관객들은 <데어데블>이 선사하는 액션의 진정한 카타르시스에 흠뻑 취해, 이 슈퍼 히어로에 자신을 온전히 내 맡기길 주저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할리우드 배우 중 가장 섹시한 남자배우로 떠오른 밴 에플렉은 거침없고 도발적인, 그러나 안정적인 미국적 남성미의 전형으로 일컬어진다. 인디 영화에서 블록버스터까지, 조연에서 주연까지 장르와 역할을 가리지 않는 벤 애플렉은 야생마적인 매력을 갖추고 있어, 어느 영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그가 나타날 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밴 에플렉의 스타성에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는 이 영화의 감독은 스티븐 존슨. 위노나 주립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98년, 존 어빙의 소설’오웬 미니를 위한 기도’를 각색한 영화 <사이먼 버치>로 영화 신고식을 치른 존스 감독은 화면 구성이나, 배우들의 연기력을 극대화하는 능력 등에서 ‘신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연출능력을 발휘한다는 평을 받았다.

자신의 첫 작품을 드라마로 끝낸 존슨 감독이 연이어 <데어데블>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메가폰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놀라운 연출력과 감각,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상상 속에서 구체화 시켜온 모든 현란한 액션에 대한 제작진의 강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미국 슈퍼 영웅물에 그리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온 한국 관객들의 눈을 과연 이 복수에 불타는 기괴한 가면 영웅이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인지. 모든 답변은 21일 나올 수 있을 것이다.


200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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