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전기사업법은 보안체제의 문제점 말고도 여러 개의 굵직한 사안들이 있어서 조항을 몇 개 수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 완전히 폐기하고 새로 만드는 전면개편의 형식을 취했다.

초안의 내용은 주로 일본과 미국의 법규체제를 참고로 했으며 그 중 보안체제에 관해서는 당시 일본의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즉 모든 전기공작물의 종류를 기존의 전기사업(한전)용과 자가용 이외에 이제까지 전기사업용의 범주에 들어 있던 일반(가정)용을 독립 유형으로 구분하고, 보안책임은 각자 소유자가 권리를 가지고 또 책임을 진다는 ‘자주보안체제’를 채택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기사업용과 자가용은 기존대로 하면 문제가 없지만 새로운 유형으로 구분된 일반용에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보안업무를 지원해 줄 필요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안 된 것이 ‘전기보안협회’라는 비영리기관이었다(후일 전기안전공사로 개편되고 또 근거법령도 독립된 것을 가지게 되었다).

문제는 이 기관의 운영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일본은 전기를 공급하는 전기사업자가 약간의 수수료를 이 기관에 지급하는 방법을 택했는데, 한국의 경우 당시 한전의 일반 가정용 안전진단을 위한 경비는 아주 미미해서 이 수준으로 새 기관에 지급해서는 도저히 운영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전기안전공사의 존재는 일반용전기수용가의 보안을 효과적으로 보완하는 일이고 나아가 신 전기사업법 자주보안체제의 성패와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래서 새 기관을 설립하는 구상은 우선 그림만 그려놓고 (다른 몇 가지 의문점과 함께) 현지에 가서 그 운영상항을 알아보기로 했다.

필자가 장기 출장으로 관련 외국을 방문하면서 여러 가지 사안을 알아보는 중에 일본의 전기보안협회를 방문했을 때 이들은 자기네 수지결산 내용을 속 시원하게 공개 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방문해서 안면이 생긴 간부와 저녁을 하면서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슬그머니 하는 말이 “자가용 수용가의 안전 위탁이 중요한 재원”이라는 내용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 때 무릎을 탁 쳤다. 바로 그거다.

그러나 귀국 후 자가용 수용가를 점검해 보고 나는 크게 실망했다. 당시는 아직 산업이 발전되기 전이라서 자가용 수용가의 수효 또한 미미한 형편이라 도저히 수수료 재원을 마련할 길이 막막했다.

궁리를 한 끝에 자가용 전기공작물의 범위를 좀 넓게 책정하기로 했다. 당시 일본은 자가용으로 ‘자가발전을 하거나 고압이며 50kW 이상의 수전설비’인 전기공작물로 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당분간 ‘자가발전을 하거나 50kW 이상의 수전설비’로 대폭 넓힘으로서 보안위탁 가능 대상을 확대했던 것이다.

저압 50kW 수용가를 자가용으로 올리는데 무리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언젠가 전기안전공사의 운영이 정상궤도에 오를 지음에는 이것도 정상화 될 것으로 믿고 그렇게 했었다. 예상대로 안전공사는 짧은 기간 내에 운영이 정상화 됐고 자가용의 구분도 정상화 되었다.

전기안전공사가 설립 된지 32주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이 기관을 만드는데 작은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서 흐뭇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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